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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한능검 공부. 을미개혁부터 광무개혁까지 정리

by 아침뱃살2 2025.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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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오개혁이후 조선은 외세의 간섭 속에서 혼란을 겪으며 개혁을 이어갔습니다.

을미사변과 단발령, 아관파천을 거쳐 대한제국이 수립되고, 고종은 광무개혁으로 자주적 근대화를 시도합니다.

 

을미개혁~광무개혁
을미개혁, 광무개혁

 

 

단발령, 아관파천, 광무개혁 흐름 공부

일본 주도, 국민 반발 폭발

을미개혁(1895)

단발령 시행, 친위대, 진위대 설치, 태양력 도입 등

갑오개혁 이후 조선은 점점 일본의 간섭을 더 강하게 받게 됩니다.

그 결정적인 사건이 바로 을미사변(1895)입니다.

 

을미사변이란?

1895년 10월, 일본이 조선의 민비(명성황후)를 경복궁 안에서 시해한 사건입니다.

일본은 친러 정책을 쓰던 민비를 제거함으로써, 자신들의 세력을 강화하려 했죠.

 

이 사건 이후, 일본은 친일 내각(김홍집 내각)을 세우고 또 다른 개혁을 밀어붙이는데,

그것이 바로 을미개혁입니다.

 

을미개혁 주요 내용

  • 단발령 : 유교 사회에서 큰 충격
  • 태양력 사용 : 서양식 달력 도입
  • '건양' 연호 사용
  • 친위대(중앙군), 진위대(지방군) 창설 : 일본식 군대
  • 종두법 실시 : 천연두 예방접종 도입

하지만 단발령과 같은 급격한 서양식 개혁은 백성들에게 큰 충격이었습니다.

특히 상투를 자르라는 건 조선의 전통과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죠.

 

을미의병(1895)

을미사변과 단발령에 분노한 유생들과 농민들이 을미의병을 일으켜 항쟁에 나섰습니다.

 

고종의 도망, 러시아와 손잡다

아관파천(1896)

친일 내각 붕괴, 외세 갈등 심화

을미사변과 을미개혁으로 백성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고종은 일본의 위협을 피해 러시아로 도망칩니다.

이 사건이 바로 아관파천(1896)입니다.

 

아관파천이란?

1896년 2월, 고종이 러시아 공사관으로 거처를 옮긴 사건입니다.

아관파천 영향

  • 친일 내각 몰락, 친러파 부상
  • 일본 세력 약화, 러시아 영향력 확대
  • 갑오, 을미개혁 중단
  • 국민의 불안과 외세 불신 심화

이로써 조선의 정국은 친일 ↔ 친러로 갈등이 심화되며, 자주적인 개혁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외세 간섭 속에서 왕권을 되찾은 고종은 이제 '황제국'을 꿈꾸게 됩니다.

 

대한제국의 마지막 개혁

광무개혁(1897~1904)

황제 중심 개혁, 근대국가 수립 시도

1897년, 고종은 러시아 공사관에서 환궁한 뒤 국호를 "대한제국"으로 바꾸고 스스로 황제에 올라 광무개혁을 추진합니다.

 

대한제국 수립(1897)

  • 국호 : 대한제국
  • 군주 : 고종 황제
  • 연호 : 광무

 

광무개혁 주요 내용

  • 구본신참
  • 황제 중심의 전제 군주제 강화
  • 원수부 설치 : 황제가 군 통수권 직접 행사
  • 중앙, 지방 행정 개편
  • 양전사업 : 근대적 토지조사 실시
  • 지계 발급(1902) : 근대식 토지 소유 증명서
  • 근대적인 회사 설립 허용
  • 상공업 진흥책 추진
  • 금 본위 화폐 제도 시도
  • 근대식 군대 정비
  • 무기 제조소 설치
  • 상공학교, 실업학교 설립
  • 전차, 전화 등 인프라 정비
  • 근대적 공장 운영

한계

  • 외세 간섭 심화
  • 재정 부족, 관료 패
  • 지계 발급이 토지 강탈로 악용되기도 함
  • 결국 을사늑약(1905)을 막지는 못함

 

외세의 압박과 내부의 한계로 광무개혁은 끝내 빛을 보지 못했습니다. 이후 슬프게도 국권을 빼앗기기 시작하죠.

다음 글에서는 러일 전쟁부터 시작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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