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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

흥선대원군의 통상 수교 거부 정책(쇄국정책)

by 아침뱃살2 2025. 7.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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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조선 후기 대표 정치가 흥선대원군에 대해 정리해보겠습니다.

개혁과 쇄국정책(통상 수교 거부 정책)의 주인공!

 

흥선대원군
흥선대원군

 

 

흥선대원군

흥선대원군(이하응)은 어린 아들 고종을 왕위에 올리고, 자신이 대신 정치를 하면서 조선 개혁을 시작했어요.

 

중앙 정치 개혁

비변사 혁파, 의정부와 삼군부 부활

비변사 폐지

비변사 : 중종 때 삼포왜란을 계기로 변방의 일을 담당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입니다. 임진왜란 이후 조직과 기능이 확대되고 세도 정치 시기에 외척 세력의 기반이 된 기관이었습니다. 흥선대원군이 이를 폐지했어요.

 

삼군부 부활

의정부와 삼군부 기능을 부활했습니다.

 

법, 제도 정비

대전회통, 육전조례

법을 새로 정비해서 조선을 바로 잡고 싶었던 거죠.

  • 대전회통 : 조선의 새로운 법전
  • 육전조례 : 법 시행 규칙 정리

 

돈을 어떻게 모았을까?

경복궁 중건

왕실의 상징 경복궁이 오랜 전쟁으로 무너졌는데, 흥선대원군은 이를 다시 짓기로 결심했어요. 그런데 문제는 돈...!!

  • 원납전 : 자발적 헌금이라서 백성에게 강제로 걷은 돈
  • 당백전 : 기존 상평통보보다 100배 높은 액면가의 화폐 발행으로 물가 폭등, 경제 혼란

 

만동묘도 없애버리다

서원 철폐

지나치게 많았던 서원은 붕당 정치와 부패의 원인이었기에 철폐합니다.

  • 서원 철폐 : 전국 수백 개 서원 중 47개만 남기고 전부 철폐
  • 만동묘 철폐 : 명나라 신종을 기리는 곳.

 

세금과 토지 제도 개혁

양전 사업, 호포제, 사창제

  • 양전 사업 : 전국의 땅을 다시 조사
  • 호포제 : 집(호)마다 군포를 걷음 - 양반도 군포를 내야 했어요.
  • 사창제 : 곡식 창고를 마을이 직접 운영해 가난한 사람을 도와주는 제도.

 

쇄국정책

외세의 침략과 통상 수교 거부 정책

19세기, 서양이 문을 열라고 요구했으나 흥선대원군은 이를 단호히 거부! 외국과의 교류를 막으려 했죠.

외세 침략 사건 순서

  1. 제너럴셔먼호 사건(1866) - 미국 상선, 박규수가 불태워 침몰시킴
  2. 병인박해 (1866) - 천주교 탄압(천주교 선교사와 신자 처형)
  3. 병인양요 (1866) - 프랑스, 로즈 제독 강화도 침입, 한성근(문수산성), 양현수(정족산성) 활약
  4. 외규장각 도서 약탈
  5. 오페르트 도굴 사건 (1868) : 남연군 묘 도굴 시도
  6. 신미양요 (1871) - 미국, 로저스 제독이 이끄는 미군이 강화도 침입, 어재연 장군의 항전(광성보전투)
  7. 척화비 건립

척화비

  • 서양과 싸우겠다는 의지를 담아 전국에 척화비를 세움
  • 척화비 문구 :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면 싸워야지, 화친하면 곧 나라가 망한다.
  • 이게 바로 통상 수교 거부 정책

 

흥선대원군은 최익현의 상소로 정계에서 물러나고 고종이 정치에 나서게 되면서 통상 수교 거부 정책은 완화되었습니다.

이후 일본은 운요호사건을 계기고 강화도 조약을 체결하게 됩니다. 이 내용부터는 다음 글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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