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사

혼돈의 후삼국시대, 통일 고려의 서막 한국사 공부 정리.

by 아침뱃살2 2025. 7. 9.
반응형

8세기 중후반까지 안정적이던 신라는 9세기 들어 왕권이 약화되며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문제는 진골 귀족들이 왕위를 놓고 끊임없이 다퉜다는 점.

왕이 자주 바뀌고 정치는 불안정해졌어요.

왕권 약화 / 진골 귀족의 왕위 다툼 / 정치 혼란

 

후삼국시대

민란의 시작

원종과 애노의 난 (889년)

진성여왕 때, 농민과 노비가 견디지 못하고 봉기한 사건이에요.

상주 지역에서 원종과 애노가 주도해 대규모 반란을 일으켰어요.

신라 조정은 이 반란을 진압하는 데 실패했고, 각지로 민란이 확산되었습니다.

이 반란을 계기로 지방 호족의 독립적인 세력화가 본격화되었고,

후삼국시대의 배경이 되었어요.

 

 

 

지방 호족의 등장 

후삼국의 기반

중앙 정부가 반란과 내분으로 혼란해지자, 지방에선 새로운 세력인 호족이 나타났습니다.

호족은 토착 세력, 지방 관료, 군사력 보유자였고 자기 지역을 사실상 독립적으로 다스렸어요.

●호족의 성격 정리

  • 출신 : 지방 촌주, 무장 출신, 중앙 관리 출신, 군벌 등 다양
  • 특징 : 군사력, 경제력을 바탕으로 독자적 지배
  • 의의 : 후백제, 후고구려는 세우는 중심 세력

 

개혁을 꿈꾼 6두품

최치원

6두품 출신 중 대표적인 인물. 최치원은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와 신라 사회의 문제점을 비판했어요.

대표 저술은 계원필경, 토황소격문, 사산비명 등이 있습니다.

하지만 진골 중심의 신라 사회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실패한 개혁가로 남았습니다.

 


견훤 vs 궁예

후삼국 성립

●후백제(900년)

견훤의 나라. 상주의 군 소속 장군.

특징 : 무력으로 지방을 장악하고 후백제를 세움

도읍 : 완산주(전주)

정책 : 왕건과 경쟁하며 한강 유역 진출 시도

 

●후고구려(태봉 901~918년)

궁예의 나라. 신라 왕족 출신 승려.

특징 : "미륵불"이라 칭하며 절대 권력을 휘둘렀으나 민심을 잃음.

도읍 : 송악 → 철원으로 옮김

폭정과 의심 많은 성격으로 지지를 잃고, 918년 신하 왕건에게 쫓겨나고 고려가 세워짐.

 

 

후삼국 통일

고려 건국

918년 왕건. 송악 지방 호족 출신.

특징 : 바다길 무역으로 성장

건국 이후 온건한 통합 정책을 펼침.후백제 안에서는 견훤과 그의 아들 신검이 왕위 다툼을 벌였고,견훤은 금산사에 갇혔다가 탈출해 고려고 도망친 뒤 왕건과 동맹을 맺음.

 

935년 신라 경순왕 항복 (무혈 합병)936년 후백제 신검 격파 (일리천 전투)

 

이렇게 후삼국이 하나로 통일되어 고려가 한반도의 중심 국가가 되었습니다.다음 글에서는 이렇게 탄생한 고려가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어떤 왕들이 있었는 지 자세히 알아볼게요!  

 

 

▶ 아침뱃살의 한마디

후삼국시대. 슬슬 왕이며 업적이며 짬뽕되기 시작하고 블로그 글도 점점 ~음. ~임. 말투가 짧아지는 중이에요.ㅋㅋ

 

2025.07.08 - [분류 전체보기] - 문왕, 선왕 시대 발해 정치, 문화 완전 정복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