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만 있었다고? 북쪽에는 발해가 있었다!
이번 글에서는 남북국시대의 형성과 발해의 발전에 대해 요약 정리해 볼게요.
남북국시대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한반도에는 진짜로 하나의 나라만 있었을까요?
아니에요. 북쪽에는 고구려의 후계 국가인 발해가 있었고, 남쪽에는 신라가 있었습니다.
이 두 나라가 공존했던 시기를 남북국 시대라고 부릅니다.
"남북국"이라는 표현은 조선 후기 실학자 유득공이 처음 사용했어요.

발해
발해를 세운 사람은 대조영! 그는 고구려가 멸망한 지 30년 뒤,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을 이끌고 698년, 천문령전투로 당나라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었어요.
이후 동쪽의 동모산에서 나라를 세웠습니다.
처음에는 국호를 "진"이라고 했다가 나중에 "발해"로 바꾸었어요.
대조영은 자신이 고구려를 계승한 왕이라는 걸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지금의 만주, 연해주를 중심으로 나라를 키웠습니다.
발해의 전성기
발해의 전성기를 이끈 왕은 문왕과 선왕.
문왕은 수도를 상경으로 옮기고, 당나라 문물을 받아들여 나라의 제도를 튼튼히 정비했습니다. 당과의 교류도 활발.
불교 진흥, 체제 정비, 교류 확대와 더불어 일본과의 외교도 활발했습니다. 신라와의 상설적인 교통로를 만들어서 교류하기도 했어요.
중앙 정치 체제를 당나라식으로 개편하여 중앙 관제를 3성 6부제로 정비했습니다.
3성 6부제 = 문왕 시기 중앙 집권 강화 제도
선왕 때는 발해의 땅이 가장 넓어졌어요. 한반도 북부부터 만주 대부분, 연해주까지 뻗었고, 그로 인해 해동성국이라고 불려졌습니다.
지방통치는 초기부터 5경 체제가 있었지만, 선왕 때
5경 15부 62주 체제를 완성했습니다.
광대한 영토를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함(지방 세력 통제+중앙 집권 강화).
주자감이라는 국립 교육기관도 설치하여 왕족, 귀족 대상 유학교육을 실시했습니다. (고려 국자감, 조선 성균관과 비슷)
중정대라는 감찰 기관도 있어서, 관리를 감시하고 부정한 짓을 하지 못하게 통제했습니다.
말, 인삼, 담비 가죽과 같은 특산품을 당나라로 수출도 했습니다.
연호 : 인안(무왕), 대흥(문왕), 건흥(선왕)
● 발해의 문화
고구려와 당나라의 조화.
발해의 무덤 양식을 보면, 고구려 계승 국가라는 걸 알 수 있어요.
정혜공주 묘는 굴식돌방무덤(고구려식), 정효공주 묘는 벽돌무덤+벽화(당나라식)입니다.
수도였던 상경성은 당나라 수도인 장안성을 본떠서 건축되었고,
이는 발해의 다문화적인 성격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죠.
멸망
926년. 북방의 강국 거란(요나라)에게 멸망했어요.
일부 발해 유민들은 고려로 넘어가 고려사회에서 활동하였습니다.
고구려 계승 근거
지배층이 고구려인, 발해왕이 스스로를 고려국왕이라 칭함,
유물 (이불병좌상, 치미, 연꽃무늬 수막새, 온돌 )
정혜 : 고구려식 무덤
정효 : 당나라식 무덤
3성 6부 : 중앙제도, 친당
5경 15부 62주 : 지방제도
해동성국 : 선왕 시기 전성
▶ 아침뱃살의 한마디
문왕 때 당이랑 친해지고, 선왕 때 전성기! 발해는 외울 게 좀 적어서 좋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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